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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13, 2026 - Key Points for an Evangelist (Exodus 23:1-9)

Sep 13
9 min read

Updated: Oct 6

전도자가 갖추어야 할 포인트

출애굽기 23:1–9  |  2026. 9. 13.


서론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 소크라테스에게 어느 날 친한 친구가 흥분해서 찾아왔답니다. 막 흥분해서 얘기하는 거예요. 방금 내 제자에게 큰 소문을 하나 들었는데 당신도 들어 본 적 있냐고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는 거예요. 그 얘기를 들은 소크라테스는 그 소문을 확인해 봤습니까 하고 물어봤대요. 아, 그러니깐 아닙니다, 그냥 들었을 뿐입니다 하고 대답했다고. 소크라테스가 또 얘기했다 그래요. 그러면 그 좋은 이야기입니까 하고 물어봤대요. 그러니까 그 친구가 아닙니다 하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아, 그래 또 물어봤다고요. 그러면 나에게 유익이 되는 이야기입니까? 하고 물어봤다 그래요. 그러니까 그것도 아니라고 얘기해. 이 소크라테스가 얘기했다고 그럽니다. 진실도 아니고 좋은 이야기도 아니고 유익한 이야기도 아니면은 굳이 나한테 얘기할 필요가 있습니까? 하고 얘기를 했다 그래요.

간단한 얘기 같습니다만은 우리 전도자들이 꼭 갖춰야 될 핵심 포인트가 있는 줄 믿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헛된 소문에 휘말려 가지고 이렇게 모든 시간과 정력을 소비하는 경우가 많이 있죠. 그래서 오늘 말씀, 전도자가 갖춰야 될 포인트를 오늘 꼭 붙잡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1. 거짓 증인이 되지 말라

(1) 말씀의 증인

첫 번째 우리가 잡아야 될 것은, 오늘 본문 같이 읽었습니다만은, 거짓 증인이 되는 그런 자리에 들어서지 말라는 거예요. 오늘 1절 말씀 보게 되면은 “너는 거짓된 풍문을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라” 하고 지금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중요한 걸 먼저 생각해야 되겠어요. 하나님은 말씀을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란 말이에요. 근데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말씀으로 “빛이 있으라” 하니까 온 우주에 빛이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땅은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말씀을 하시니까 나무가 자라서 열매 맺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거기에는 의미가 있고 능력이 있는 것을 우리가 알 수가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인간에게도 주셨다는 사실이에요. 이 사람 말에도 의미가 있고 권세와 능력이 나타납니다. 사람이 이렇게 욕을 하게 되면은 상대방은 얻어맞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이 아프기 시작하는 거예요. 뭐냐? 칭찬을 듣게 되면은 기분이 좋아지고 힘이 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이 말씀에도, 말에도, 우리 인간이 갖는 말에도 놀라운 능력과 의미가 들어 있는 걸 볼 수가 있어요.

그 하나님께서 오늘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라” 하면서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거예요. 왜 그렇습니까? 우리 인간의 말에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여러분, 근거 없는 소문이라든지 거짓말을 이렇게 하게 되면은 그거를 듣는 사람은 상처를 받게 되고 고통을 느끼게 되는 거예요. 근거 없는 소문에 어떤 사람은 자살하고 죽음까지 이르게 되는 그런 결과가 나타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시는 거예요. 거짓을 하지 말라는 거예요, 지금.

2절 보게 되면은 또 다른 말씀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라” 하고 얘기하고 있어요. 사람들은 이상하게 군중심리라는 걸 가지고 있어요. 다수들이 막 얘기하면 그것을 따라가지고, 아, 이렇게 돼 있구나 하고 결정하는 그런 행위를 나타내고 있는 거야. 이것이 옳은지 틀린지 분별하기 이전에 그냥 따라서, 아, 괜찮겠지 하고 이렇게 따라가는 거예요. 무슨 말씀이냐? 너희들은 군중심리, 다수의 의견이 있다 하더라도 분별력을 가지고 있어라 하는 말씀이란 말이에요.

여러분, 빌라도가 유대에 있는 모든 무리들이 와서 “죽여라, 죽여라” 하고 소리 지르고, 그렇게 하니까 그냥 군중에 따라가지고, 자기가 틀림없이 예수님이 죄가 없는 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사형을 명령했던 거예요. 군중의 말을 따라가지고 이렇게 엄청난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이런 죄를 범하게 된 거예요.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좋은 제도가 민주주의입니다. 근데 민주주의 문제가 뭐냐면, 민주는 다수결로 모든 걸 결정하는 데 있는 거예요. 다수결 때문에 또 심각한 문제가 생기게 할 수도 있단 말이에요. 여기서 말씀하시는 건 뭐냐? 우리의 판단 기준은 다수결도 아니고 민주주의도 아니고, 우리의 판단 기준을 정확하게 잡으라는 거.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온 우주 만물 생기게 하시고 모든 의미대로 행동하시는 생명의 말씀, 하나님 말씀을 붙잡으라는 얘기예요.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붙잡는 순간에 창조의 역사가 일어날 뿐만 아니라 치유도 일어나게 되는 거예요. 모든 기준은 말씀으로 붙잡아야 되는 거예요.

(2) 증인의 기준

3절 말씀 보겠습니다.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라” 하고 또 말씀하고 있어요. 재판할 때 가난한 자라고 무조건 이 사람이 불쌍하다고 편을 드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짓 말라는 거예요. 근데 6절 보면 또 다른 얘기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정의를 굽게 하지 말라”는 말씀이 나타납니다. 이 비슷한 말씀은 의미가 전혀 다른 것을 우리가 생각해야 돼요.

이것은 무엇을 얘기하냐면은 인간에게는 두 가지의 본능이 있는 것을 우리가 붙잡아야 돼요. 인간에게는 누구나 선한 본능이 있고 악한 본능을 갖고 있습니다. 선한 본능이 뭐냐면 약자를 보게 되면 도와주고 싶어 해요. 그래 가지고 그 사람이 뭐 잘못됐다 하더라도 이 약자 편을 이렇게 드는 그런 경우가 많단 말이야.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란 말이에요. 이건 무엇을 얘기하냐? 우리가 선한 본능으로 행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란 말이야.

또 인간에게는 악한 본능이 있습니다. 가난한 자, 연약한 자를 보게 되면 무시하고 멸시하는 이런 악한 본능을 갖고 있는 거예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봤을 때 아주 뭐 가난하게 태어났고 보기도 형편없으니까 멸시해 버린 거예요. 네가 무슨 하나님의 아들이고 네가 무슨 왕이야 하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 버리게 된 거예요.

그럼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살아야 되느냐 말이야. 우리는 여기서 말씀을 잘 잡아야 되는 거. 잠언 3장 5절, 6절 말씀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우리 증인들이 가져야 될 기준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우리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하나님 말씀이요, 그 말씀 놓고 기도해서 응답받는 거예요. 우리가 무슨 인도를 받냐? 말씀을 통해, 기도를 통해서 성령 인도받는 것이 우리의 삶이 돼야 될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어떤 증인의 자세를 가져야 될 것이냐 하는 것이 우리가 붙잡아야 될 거예요.

2. 참된 증인이 되라

(1) 증인의 자세

4절, 5절 말씀, 아주 중요한 말씀하고 있어요.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진 것을 보거든 그것을 버려두지 말고 그것을 도와 그 짐을 부릴지니라” 하고 하나님께서 명령하고 계신 거예요. 이거 무슨 말씀이냐면, 네 이웃에 있던 원수가 있느냐? 그를 버려두지 말고 도와줄 생각을 하라는 그런 얘기란 말이야. 이 원수에 대한 사랑은 신약에 예수님께서만 하신 말씀이 아닌 걸 볼 수가 있죠. 이 원수에 대한 사랑은 성경에 나타나는 중요한 교훈인 것을 우리가 붙잡아야 돼요.

먼저 우리가 붙잡아야 됩니다. 이거 지금 하나님께서 어떤 백성에게 얘기했느냐 하는 걸 우리가 붙잡아야 돼요. 지금 이 율법 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는 말씀이란 말이에요. 다시 말씀드리면 너희들이 백성들 간에 서로가 어떤 관계를 해야 될 거냐? 사랑하는 관계를 가져라 하는 말씀이란 말이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오직 아브라함을 조상 삼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인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죠. 우리가 그런 면에서 본다면은 너희들은 다 같은 형제가 아니냐, 같이 사랑해라. 원수는 무슨 말이냐? 너희들 사랑해라 하는 의미를 갖고 있단 말이야. 그래서 이 사람들은 블레셋 족속이라든지 또는 뭐 다른 민족들에 대해서는 막 원수를 갚을지 몰라도, 백성들끼리는 너희들 정말 마음을 다해서 사랑하라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중요한 말씀을 마태복음 5장 43절에서 하신 걸 볼 수가 있어요.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하고 말씀하고 있어요. 이 구약 시대 보게 되면은 가나안 족속은 한 명도 남기지 말고 애들까지 다 죽이라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원수들을 다 죽여 버려 이렇게 말씀하셨던 거예요. 근데 예수님께서 지금 말씀하시기를,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고 이렇게 말씀하신 걸 우리가 들었지만은, 그러나 5장 44절 말씀이 중요합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이것은 무엇을 말씀하고 있냐?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에 사랑하는 그 대상, 사랑할 대상이 변화가 되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거예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이제는 핍박자까지 사랑하며 기도를 해라 하고 말씀하시는 거. 옛날에는 핍박자라든지 괴롭히는 민족들을 심판하는 그런 명령을 하셨다는 걸 볼 수가 있죠. 근데 이제는 말씀이 핍박자까지도 사랑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이에요. 다시 말씀드리면은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졌던 형제의 개념이 십자가를 통해서 바뀌었다는 걸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십자가의 능력을 나타내는 거예요.

그 시작이 어떻게 되느냐? 누가복음 23장 34절부터 시작되는 걸 보세요.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고 주님께서 원수들을 향해서 기도하시는 걸 볼 수가 있습니다. 자기를 죽이는 그 원수를 향해서 주님께서 그들을 향하여 기도하십니다. 원수가 사랑의 대상으로 바뀌는 걸 나타내고 있는 거예요. 저들이 왜 죽이는지, 어떻게 해서 그런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하면서 기도하면서, 저들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살려야 될 자입니다 하고 지금 주님이 기도하시는 내용이란 말이에요. 십자가의 피를 통해서 모든 이방인까지 구원받게 되는 놀라운 역사를 주님께서 지금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제는 예수님의 피를 받는 자, 피를 믿는 자는 모두가 다 형제가 되는 걸 나타내고 있는 거예요.

(2) 증인의 삶

그러면 우리가 어떤 증인의 삶을 살아야 될 것이냐? 7절 말씀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거짓 일을 멀리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 하고 말씀하고 있어요. 여기 의로운 자라는 것은 허물이 없는 자, 죄가 없는 자를 나타내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은 형제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탐욕 때문에, 자기하고 생각과 사상이 틀리다 그래 가지고 막 죽입니다. 너희들이 형제에 대해서 가장 알아야 될 것은 생명의 중요성을 꼭 붙잡으라는 거예요. 아브라함의 한 몸, 한 형제가 아니냐? 너희는 한 몸이다 하고 지금 말씀하시는 거예요. 우리 구원받은 우리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면서 다 한 몸이 돼 있습니다. 내가 구원을 받아 성령이 임한 귀한 존재라면 상대방도 구원받아 귀한 존재니까 그를 귀하게 아껴라, 귀중하게 생각하라 하는 말씀이란 말이야.

또 중요한 말씀, 8절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며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저개발 국가일수록, 뭐 다 마찬가지겠습니다만은, 뇌물로 못 하는 짓이 없습니다. 그걸 잠언 17장 8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어요. “뇌물은 그 임자가 보기에 보석 같은즉 그가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하게 하느니라” 하고 말씀하고 있어요. 뇌물 가지고 너희들 세상 살아가면서 못하는 것이 없지, 만사형통인 줄 알고 있지 하고 지금 말씀하시는 거예요.

근데 하나님께서는 전도서 7장 7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탐욕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하게 한다”고 말씀하고 있어요.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하게 한다는 것은 무슨 말이냐? 바로 영적으로 너희들은 사탄에게 속는 것이라는 거예요. 왜냐?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행위라는 거야. 빌립보서 4장 13절 말씀 보게 되면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고 말씀하고 있단 말이야. 주님 안에 모든 답이 다 있고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데 주님을 찾지 아니하고 다른 방법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속는 거라는 거예요. 문제 있느냐? 주님께 나오라는 거예요.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9절 말씀 보겠습니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은즉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 지난 시간에도 나그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만은, 나그네에 대한 얘기가 성경에 아주 많이 나옵니다. 나그네를 히브리어로 ‘게르’라고 하는데 이 게르가 구약에만 92번이 나타나 있어요. 신구약 합치게 되면 150번 정도 이렇게 나타나고 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0년 동안 나그네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 사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본향인 가나안 땅으로 들어오기 위해서 그 모든 걸 기다리면서 이렇게 수고한 걸 볼 수가 있죠. 아, 광야 생활은 정말로 나그네 사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거예요.

광야 생활에 있었던 이 나그네 삶, 바로 이것이 구원받은 우리의 삶인 줄 믿습니다. 우리도 지금 나그네 삶을 살고 있는 거예요. 우리의 본향은, 절대로 여기가 오래 살 곳이 아니라 조금 있으면은 우리 본향으로 우리 돌아갈 사람들이란 말이야. 무슨 말씀이냐? 너희들이 세상에 너무 집착하면서 살지 말라는 거예요. 본향을 향해서 바라보고 살아라 말이야. 모든 방향은, 모든 목적은 하나님과 함께 살 걸 생각하면서 모든 걸 준비하는 거죠.

근데 여기서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하는 말씀 가운데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걸 찾아볼 수가 있어요. 이것은 뭐냐? 92번이나 계속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그네를 통한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 것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예수님 십자가를 통해서 성취하신 그 구원의 역사를 땅끝까지 증거하는 증인을 세우시기 위해서 이 말씀을 하시는 거야. 우리 전도자가 어떤 삶입니까? 전도자란 바로 남은 자요 순례자요 정복자란 말이야. 하나님께서 그 길을 미리 예비해 놓고 지금 하시는 말씀이란 말이에요. 흩어진 자, 파수꾼, 정탐꾼, 깃발 든 자의 그 길을 하나님께서 예비하셨단 말이에요.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는 것, 바로 뭐냐? 하나님께서 일곱 포인트의 모든 길을 예비해 놓으셨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통해 가지고 237을 살릴 수 있는 계획을 영세 전에 이미 세우셨다는 걸 나타내요.

땅끝까지 그 증인을 보내기 전에, 마태복음 10장 40절 보면 이미 주님께서 말씀하신 걸 볼 수가 있어요.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하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여러분, 여기 너희라는 것은 바로 뭐냐? 일곱 포인트 안에 있는 사람을 나타내고 있는 거예요. 너희들이 나가서 그 전도 현장에 나가서 복음을 증거할 때, 그때는 바로 내가 너희와 함께하는 역사가 나타나야 될 것을 나타내요.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바로 예수님 자신을 영접하는 거와 똑같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거는 바로 아버지를 영접하는 것이다. 다시 말씀드리면 일곱 포인트를 갖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항상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겠다는 걸 나타내고 있는 거예요. 왜 그렇습니까? 바로 세상을 살리는 제자들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교회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세상을 세우는 그런 제자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이들이 가는 것마다 모든 일을 재생산시키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3. 교회 살리는 전도 제자

(1) 모든 일의 재생산

사도행전 2장 42절 보게 되면은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전도자가 어떤 인도를 받을 것이냐? 말씀 강단에서 말씀을 붙잡고 기도를 통해서 응답받을 것이라는 걸 나타내요. 그래서 가는 곳곳마다 재생산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날 거예요.

(2) 모든 현장의 재창조

그렇게 되면 모든 현장에 바로 재창조의 역사가 나타나는 거. 사도행전 8장 7절, 8절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여러분, 우리가 전하는 말씀에 의미가 있고 능력의 역사가 나타난다고 얘기했어요. 더군다나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될 때는 거기 치유 역사가 나타나게 되고 현장이 변화되는 역사가 나타나는 거란 말이야.

(3) 모든 미래의 재도전

그럼 미래가 새로 시작되는 걸 볼 수가 있어요. 사도행전 11장 19절입니다. “그때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하고 말씀하고 있죠.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통해서 다시 구원 역사를 이루는 새로운 계획을 세우시는 걸 말씀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이 축복받을 줄 믿습니다. 말씀 읽겠습니다.

결론

사도행전 27장 24절 말씀을 꼭 잡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에게 반드시 이루어지고 있고 일어날 일입니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고 말씀하고 있어요. 하나님은 한 번도 우리를 떠나신 적이 없어요. 모든 사정을 다 알고 계세요. 풍랑 속에 있는지 밖에 있는지 모든 거 다 알고 계세요. 지금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계세요. 지금 말씀하시는 거예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어요. “너와 함께하는 자,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어요. 우리 믿음과,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함께하는 자들까지도 다 살리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이 응답이 여러분 가정과 사업장과 하는 모든 것에 성취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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